촬영감독이 묻고 촬영감독이 답하다

촬영감독이 묻고 촬영감독이 답하다 / (사)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

씨네21에서 발간 소식을 듣고선 학교에 곧장 신청한 게 작년 12월의 일이다. 책을 받자마자 읽기 시작했는데 이제서야 다 읽었다. 총 11명의 감독들의 챕터로 분리되어 있는데, 덕분에 다른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 읽어도 흐름에 끊김이 없었다.

어느 챕터에선 인터뷰어였던 촬영감독이 어느 챕터에선 인터뷰이가 되어있는 재밌는 구조다. 감독마다 서로 다른 취향, 스킬,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대체로 공통적이었던건 촬영이 영화보다 우위에 있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촬영이 튀는 바람에 영화의 흐름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마치 미생의 철강팀같은 마인드. 촬영은 영화의 어느 기술보다도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드이라 생각했는데, 본인들은 (그리고 어쩌면 진짜로) 든든한 백엔드 엔지니어를 자초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이미 본 영화의 촬영감독의 인터뷰와, 아직 보지 않은 영화의 촬영감독의 인터뷰는 다른 온도로 다가왔다. 관심이 없던 영화들조차 촬영 비하인드를 듣고나니 궁금해지기 일쑤였다.

연구하고 싶지만 잘 알지 못하는 색보정이나, 장비에 대해서도 미약하게나마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캐논/소니 같은 메이저 카메라 브랜드밖에 모르던 내게, 레드나 아리같은 영화 장비 제조사에 관심을 갖게하기도. 레드 에픽이나 아리 알렉사가 단순히 하나의 모델명인줄 알았지 레드사의 에픽 모델인줄은 전혀 몰랐으니까.

지금 진행중인 연구가 영화 색상과 관련된 것이라 그런지, LUT 사용 프로세스나 색보정 툴은 어떤 것들을 쓰는지도 유심히 보았다. 덱스터가 단순 CG회사인줄만 알았지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돈을 벌고 있을줄이야!

도서관에서 왕창 빌려 쌓아놓은 필름크래프트가 얼른 읽고싶어진다.

좋았던 구절을 남긴다.

p.48

(김태수/인터뷰어) Q. 후반 작업에서 중점을 둔 컨셉은 무엇인가?
(김동영/<남과 여> 촬영감독) (전략) 또 예전부터 하던 것이긴 하지만 그레인 입자도 넣고 빼고 많이 했다. 그냥 디지털 툴에서 주는 입자 말고, 필름 입자를 스캔해서 파는 걸 구입해서 하이라이트에만 넣기도 하고, 암부에만 넣기도 해보고.

p.115

(조영직/인터뷰어) Q. 영화를 보았을 때 카메라의 시선이 멀리서 아이들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관찰한다는 느낌보다는 영화 속의 보이지 않는 한 아이의 시선인 것처럼 관객들이 아이들의 삶 가까이 밀착해서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게끔 도와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우리들>의 촬영 컨셉은 어떻게 되는가?
(민준원/<우리들> 촬영감독) (전략) 아이들을 찍은 많은 영화가 대부분 관조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를 다룬 경우가 많았는데, <우리들>은 카메라가 가능한 인물과 밀착하고 그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인물처럼 움직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면에서 다르덴(Dardenne) 형제의 영화를 많이 참고했는데 ‘카메라가 인물들 사이에 들어가있다’는 느낌들이 좋았다. 영화 속의 인물들이 격정적으로 연기할 때 계산된 동선, 세팅된 조명과 잘 만들어진 프레이밍이 아니라 영화 속 인물들과 함께 호흡하는 듯한 카메라가 때론 잔인할 만큼 이야기에 빠져들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