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시간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시간 / 이동진

역시나 이번에도 이명세 편까지는 읽지 못했다. 최동훈 편은 따로 한 번 봤던터라 술술 읽혔고, 박찬욱 편을 읽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데에 기쁨이 느껴지기보단 머리가 아파졌다.

좋았던 구절 몇 가지.

p.104

박찬욱: 자기가 모르면서 지은 사소한 잘못이 어떤 사람에게는 엄청난 비극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게 그 핵심이겠죠. 그런 이야기들이 제게 흥미로운 것 같아요. 오대수가 악행의 자서전에 적은 목록은 사설 감옥에서 나간 후에 찾아가서 복수해야 할지도 모를 사람들의 목록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일생을 통틀어 제일 미안했던 사람들의 목록이라는 점에서 이중적이죠.

p.171

박찬욱: 일반적으로 저는 관객이 영화라는 열차에 탔을 때 그 종착역이 어딘지 몰라야 좋다고 생각해요. 또는 종착역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려보니까 다른 곳이든가요.

p.201

박찬욱: 반면에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수혁이 성식을 북한 초소로 데려가려고 할 때 성식이 “안 가면 안 될까요?“라고 하는 것은 알고서 일부러 따온 대사죠. <북경 007>에서 주성치가 정보기관 요원으로 한참 교육받은 뒤 상관이 출동 직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을 때 했던 대답이거든요.

p.255

박찬욱: 저는 <공동경비구역 JSA>도 사람들이 원해서 찍은 것은 아니었거든요. 진심으로, 절박한 마음으로, 하고 싶어서 한 작품이었어요.

p.287

최동훈: 울고 나서 창피한 영화와 안 창피한 영화가 있는데, 울고도 창피하지 않았던 영화는 끝까지 사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p.374

이동진: 고전영화에서 애용되던 디졸브를 자주 사용하시는 편인 것 같습니다. 특히 <타짜>가 그렇습니다. 고니가 혼자 화투 연습을 할 때나 평경장과 전국을 떠돌 때 디졸브가 쓰였죠. 클라이맥스 직전까지 고니와 아귀의 화투 대결에서도 인상적으로 활용되었고요. 이런 방식 때문인지 감독님의 영화들은 무척 현대적이면서도 동시에 고전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최동훈: 제가 어렸을 때 즐겼던 영화들에 대한 기억을 배신하지 않거든요. 제가 좋아했던 옛날 영화들에서는 디졸브가 정말 많이 쓰였죠. <타짜>는 진행이 다소 분적되어 있고 감정이 배제되어 있으니까 좀더 감정적으로 고양시켜주기 위해서 디졸브를 애용했습니다. 영화에 서정적인 느낌이 별로 없잖아요. <타짜> 편집에 앞서 편집기사와 함께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화면 전환법은 아마도 디졸브가 될 것이라고요.

p.385

최둥훈: <도둑들>에서 절도 과정의 디테일은 제가 느낀 그대로인 거에요. 남의 눈을 피해 들어가서 문을 닫고 조용히 작업을 했는데, 그게 실패하자 황급히 빠져 나오는 것에 대한 묘사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오션스 일레븐>은 범죄 계획이 성공한다는 전제하에 범죄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는 거죠. 그런데 저는 <도둑들>에서 관객들이 절도 장면을 보면서 지금 이게 성공하게 되는 건지 실패로 돌아가는 건지 모르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랬기에 너무 디테일한 과정을 계속 보여주거나 철두철미하게 계획되어 있는 것처럼 향기를 풍기고 싶진 않았던 거죠. 사전에 약속된 대로 움직이는 모습 정도가 제게 필요했던 거에요. 애초부터 <도둑들>은 일종의 도주극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