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의 숏컷

김지운의 숏컷 / 김지운

분명 예전에 한 번 읽었던 것 같은데 감상문이 남아있지 않아 다시 읽었다. 읽으면서도 읽은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지만 글이 재밌어 끝까지 읽었다.

진짜 읽었던가?를 확인하려 도서관에서 이전대출정보 리스트를 다운받아 보게되었다. 재밌는 사실 몇 가지를 알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무수한 연기/반납/대출로 대출 정보 리스트는 딱 1400개를 채웠다. 비율을 보니 학부시절이 618개, 석사때가 380개, 박사가 402개이다. 시간의 비율로 계산해보면 석사 때 왜이렇게 많이 빌려본건지 모르겠다.

이 중 몇 개나 제대로 읽고 반납했을까 허무함이 좀 밀려왔다. 도서관에서 가장 먼저 빌려봤던 책은 2008/03/17에 빌렸던 “뮤지컬스토리 = Musical story/이수진/숲”, “원종원의 올 댓 뮤지컬 = All that musical/원종원/동아시아”, “아이러브 뮤지컬/김기철/효형출판”, “현대일반화학/Oxtoby, David W/자유아카데미(v. 1)”, “뮤지컬 : 기획.제작.공연의 모든 것/시트론, 스티븐/열린책들”. 한참 뮤지컬에 빠져있을 때였구나 싶었는데, 4학년이 될때까지도 계속 뮤지컬 책을 빌려봤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여튼, 놀랍게도 이전 대출 목록에 김지운의 숏컷이 없었다. 그 사실이 가장 충격이었는데, 그럼 그 기시감은 무엇이었을까?

김지운의 영화의 반은 재밌었고 반은 그저그랬다. 그런 탓에 그가 쓴 책을 읽기 전에도 관심 반 무관심 반이었는데, 막상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 스틸 사진이나 메이킹, 인터뷰에서 느껴지는 그는 무척이나 외향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그 스스로는 무척이나 내성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덕분에 나도 좀 헷갈려졌다. 대면인터뷰보다 서면인터뷰를 즐기며, 자신의 영화의 본질을 짚어준 아마추어 평론가에 대해 극찬해주어 감사하다하는 말을 남기고, 미팅 후 그 사람에 대해 홀로 끊임없이 생각해 영화속에 녹아낸다는 이가 내성적인건지 외향적인건지.

가볍게 나가는 글에, 박정민의 <쓸 만한 인간> 같이 별로면 어쩌지? 걱정도 들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용 덕분인지 글쓴이 덕분인지 모르겠다. 가벼운 글에서 정성과 고민이 느껴져 더 재밌었던 것 같다. 그래도 무딘 칼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그가 기고했던 글, 본인의 영화 제작기, 그리고 인터뷰가 실려있다. 짧은 호흡으로 나눠져있어 더 쉽게 읽었다. (시간은 좀 오래 걸렸지만). 나 역시도 DVD 코멘터리나 서플리먼트를 즐기기에 낄낄거리기도 했다. KINO나, 정성일, 이병우, 정윤철, 임필성, 이개모같은 김지운 이외의 에피소드들도 좋았다. 그래도 김지운의 취향은 분명 나와는 방향이 다르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김지운 감독 덕분에 토요일 아침 플레이리스트가 가득찼다. 찰리헤이든과 햇매실아저씨, garbage, cowby junkies, ciba matto, massive attack, my bloody valentine, portishead 까지~!

좋았던 구절 몇 가지.

p.71

어쩌면 내 기억을 스스로 조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편의적으로 자기 기억을 조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라틴어에서 ‘진실’의 반대말은 ‘거짓’이 아니라 ‘망각’이라는 말이 새삼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던 설날 아침이었다.

p.95

‘왜’는 관념과 명분을, ‘어떻게’는 실제를 보여준다. ‘왜’는 관념의 비밀을, ‘어떻게’는 실제의 비밀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 영화인이 지나치게 영화를 관념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창작자에게 문제는 ‘왜’가 아니라 ‘어떻게’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좀더 그럴 필요가 있다.

p.157

(영화 <그녀에게> 에 대한 글의 일부) 그의 인터뷰 중 기억나는 말, “아름다움은 상처를 준다.”

p.199

“전공 분야인 코미디를 그만두고 왜 공포물에 손대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기자들도 같은 질문을 한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단지 코미디가 잘 먹혔던 것이지, 내가 가려던 방향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내 안의 다양한 표현 욕구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이다.

p.252

지승호(인터뷰어): 감독님 영화에 대해 “내러티브가 부족하다. 비주얼만 있는 영화다”라고 하는 평론가들이 많지 않습니까?

김지운: 그런 거 신경 쓰기 시작하다 보면 머리털 하나도 안 남아요. 그것보다는 ‘내가 하려던 것들을 했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죠. 저의 영화에 대한 태도를 비판한다고 하면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제가 봤던 영화들의 감동이 있어서 그런 영화를 나도 한번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서 만들었고, 그것이 영화광 감독들의 본질이자 한계라면 한계일 수도 있는데요, 저는 자신의 어떤 문제를 본 인간이 그 문제를 외면하고 도망치다가 결국 자기 문제를 바로 쳐다보게 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그것에 가장 적합한 스토리텔링과 내러티브의 방식을 제 나름대로 선택한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