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

쇼트 영화의 시작 / 엠마뉴엘 시에티

이 책은 정말 얇아 읽기전부터 좀 얕잡아 봤던 것 같다. 읽는 내내 엄청 반성했다.

영화 전공을 했다면 달달 외웠어야할 것만 같은 내용으로 꽉꽉 채워져있다. 쉬지 않고 개념 설명을 해나가는 알고리즘 교재를 보는 느낌이었다.

쇼트 자체에 대한 분석보다 쇼트 간의 관계에 대해 더 초점이 맞춰져있어 많은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읽는 내내 쇼트에 대한 기본 개념에 무방비하게 당해, 책을 끝내고선 한 단계 성장한 느낌까지 들 정도.

인상 깊었던 구절 몇가지를 남긴다.

p.5 옮긴이의 말

이 책은 영화가 뤼메이르와 멜리에스의 시기를 지나며 쇼트라는 개념을 어떻게 만들고 변모시켰는지를 알려주는 귀하고 훌륭한 자료를 담고 있다. 신대륙을 발견한 모험가들처럼 초기 감독들은 영화라는 미지의 세계를 새로움을 향한 열정으로 탐험했다. 영화의 발전은 변화에 대한 열망과 모험의 산물이다. 쇼트라는 개념의 탄생을 통해서도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p.16 쇼트의 구상

스크린 위에 존재하기 전에 영화는 기획의 상태로 존재한다. 이러한 기획의 단계에서는 종종 글로 기록된 흔적이 남게 된다. 이 기록들을 통해 우리는 쇼트의 구상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완성된 모든 영화에서 글로 기록된 쇼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글로 기록된 쇼트들은 영화의 촬영과 편집에 대비하여 사전에 상상되고 생각되고 미리 계획된 것이다.

자료로서 보존된 영화 제작 기록을 검토해보면, 우리는 ‘쇼트’가 매우 엄격하고 또 구속적인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에서 행해질 수 있었던 일관 제조 공정, 작업의 조정과 분업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전체 각본, 즉 시나리오는 쇼트의 구성에 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시퀀스의 연쇄와 대화만을 지시한다. 반면에 ‘촬영대본’에서는 쇼트를 대략적으로 설명하고 영화를 촬영할 때 영화 스태프들이 쉽게 참고할 수 있도록 숫자를 붙여놓는다. 또 다른 자료인 ‘촬영 계획서’는 각각의 쇼트의 사용 가능성, 배경 장치, 필요한 기술적인 방법들에 따라 어떻게 쇼트들의 촬영 기간을 나누었는가에 대해 알려준다. 또한 제작 일지와 스크립트 일지는 매일의 영화 촬영을 추적할 수 있게 한다. 여기에서도 여전히 쇼트에 번호가 매겨져 있다. 어떤 것이 촬영된 쇼트인지 알려주고, 각각의 쇼트에 필요한 촬영 횟수를 촬영 날짜별로 알려준다.

-> 요즘 가장 고민이 많았던 부분인데, 음.. 정확히 ground truth 로 사용될 수 없다는게 영화의 매력이자 어려움인듯.

p.26

<이웃집 여자>(프랑수아 트뤼포, 1981)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 파니 아르당과 제라드 드파르디유. 스크린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분활 화면). 하나 속의 두 이미지 - 몇 개의 쇼트인가?

-> 답을 알려주셔야죠.. 답을 안 알려주고 끝내버리다니.. 어떤 답을 내놓아도 모순이 되는 지점이 생겨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모르겠다.

p.28

쇼트는 영화의 기본적인 요소(촬영과 편집)를 구현하고 있기 때문에, 쇼트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로 아주 특별한 경우까지 설명하려 한다면 쇼트의 개념은 와해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쇼트란 촬영에서 특별한 한순간을 잘라낸 것이라는 기본적인 입장만을 유지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 그럼 위에 질문엔 2개라고 대답해도 되는지… 임의로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지.. 그럼 한 카메라로 찍었으나 프레임 내에서 클로즈업으로 두 개의 샷으로 분리하면 그건 1개인지, 2개인지… 그냥 내가 임의로 정해놓고 하면 됨ㅋ으로 마구 우겨도 되는 것이지 좀 걱정된다.

p.37

조안 반 데르 코이켄은 그의 책에서 감독으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카메라의 세 가지 특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로, 카메라는 부분을 연주하고 즉흥적으로 소리를 낼 수도 있고 직접 개입할 수도 있는 악기와도 같다. 두 번째 특징으로 카메라는 복싱과 같다. 카메라로 힘껏 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카메라는 애무와 같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존재들과 사물들의 표면을 스쳐가는 작은 움직임들이기 때문이다.”

p.60 시간의 횡단으로서의 쇼트

관객에게 시간적 프레임은 나중에 존재할 뿐이다. 쇼트를 영화 전체 속에서 보았을 때에야 이 쇼트에 회고적인 시선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영화를 바라보는 순간, 관객은 시간적 프레임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시간’을 경험한다.

-> 무척 하고 싶었던 말인데, 이렇게 두 문장으로 표현해버릴 수 있다니. 다시 한 번 내가 말이 많은 사람임을 깨달아버렸다.

p.79 ‘타블로’에서 ‘쇼트’로

그리고 ‘쇼트(plan)‘라는 단어는 그 단어의 기원에는 없었던 다른 의미를 어떻게 갖게 되는가? 회화와 연극에서 오래전부터 사용되던 이 용어는 “실제의 장면이나 혹은 원근법에 의해 형상화된 장면에서 깊이감, 거리감을 표현하면서 시선의 방향과 수직을 이루는 평평한 각각의 면”을 의미한다. 또한 ‘전경(premier plan)’, ‘후경(second plan)’, ‘배경(arriere plan)‘으로 구분할 수 있다.

p.96 권력을 지닌 사물들

악마의 발명품은 우리가 숨기는 모든 것들을 압축하여 밝혀주고, 백배나 더 커진 세부의 모습을 영사한다. 그것이 우리는 보지 못했지만 테이블 아래 있는 신발 속에서 살아 움직였던 발이라는 것을 당신은 스크린에서 알아볼 수 있겠는가? 이것은 한 얼굴만큼이나 감동적이다. 이것을 발명하기 이전에는 이러한 부분들을 인격화시킬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는 ‘부분적인 것’들을 인격화시키고 뚜렷하게 해준다. 이것은 결과를 측정할 수 없는 새로운 ‘리얼리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