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 조훈현

생각해보면 살아오면서 읽어온 비소설이 몇개나 될까. 읽을 기회도 없었을뿐더러, 읽고 싶지도 않다. 두 편을 내리 연달아 비소설을 읽은 까닭은 아마도 숨구멍을 찾으려한게 아닐까싶다. 오랜 벗이자 근엄한 선생님을 쳐다보며 이야기를 듣고싶었다.

이 책을 알게된 경로가 씨네21이었던가. 나온지 2개월이 되서야 보게되었다. 학교 도서관에 이미 누가 신청해놓았던 탓에 편하게 볼 수 있었다.

바둑을 잘 두지 못하지만 좋아한다. 나 역시 보상에 눈이 멀어 시작했던 것이겠지만, 한번 바둑에 빠진 이후엔 분명 바둑이 재밌어서였던 것 같다.

아마 더이상 바둑을 두지 않고 요리조리 피해다녔던 것은 아마도 복기가 무서웠던 것이라 생각된다. 내 아픈 상처를 수술대에 올려놓고 냉철하게 해부해야한다는 것은 참 아픈일이기 때문이다.

조훈현의 말에 따르면, 난 아주 미련했다. 아픈걸 알면서도 상처를 수술대 위에 올리는 사람들만이 이룰 수 있는 도가 있는 것이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작은 상처에도 후덜덜 피하고만싶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도, 반박하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그의 수많았던 성공과 실패를 들을 수 있어 영광이었다.

담아두고 싶던 글귀들을 남긴다.

비인부전 부재승덕이라는 말이 있다. 인격에 문제 있는 자에게 높은 벼슬이나 비장의 기술을 전수하지 말며, 재주나 지식이 덕을 앞서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넘쳐흐르는 기쁨도, 찢어질 것 같은 아픔도, 그저 일상의 일들과 똑같이 대하도록 마음 수련을 시키신 것이다.

가장 가난한 부모는 돈이 없는 부모가 아니라 물려줄 정신세계가 없는 부모다.

밥은 오늘 하루만 먹는 게 아니다. 내일도 먹고 모레도 먹고 글피에도 먹어야 한다. 1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우리는 밥을 먹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먹은 밥이 좀 맛있었다고 흥분해서도 안 되고, 맛이 없다고 짜증을 내서도 안 된다. 승부의 세계에서 감정을 다스릴 줄 모르면 오래갈 수 없다.

“매일매일 노력하는 사람이 가장 두렵다” 라는 조치훈의 말.

승자는 기쁨에 들떠 있고 패자는 억울함과 분함 등 온갖 감정으로 괴롭다. 그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차분한 마음으로 복기를 하기란 참으로 힘든 게 사실이다. 특히 패자가 된 날의 복기는 몇 갑절 더 힘들다. 그건 마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같다. 겉으로는 덤덤해 보이겠지만 속은 너무 따갑고 쓰라리다.

인정하고 바라보자. 날마다 뼈아프게 그날의 바둑을 복기하자. 그것이 나를 일에서 프로로 만들어주며, 내면적으로도 성숙한 어른으로 성자이켜줄 것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이기고 싶다면 이기는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배워야 한다. 하나라도 더 질문해서 그 사람의 아이디어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날 둔 바닥은 현재의 내 실력과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다. 잘못된 게 있으면 지금 고치고 넘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