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파울루 #5

아침 6시부터 저녁 7시까지 알차게 돌아다닌 하루였다. 어제가 상파울루의 어두운 면을 실컷 본 하루였다면, 오늘은 상파울루의 밝은 면을 실컷 본 하루. 극과 극의 체험에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 쓰러져 한동안 멍하니 있어야 했지만ㅎㅎ 덕분에 남은 5일 동안 땡땡이칠 궁리 없이 편하게 세미나를 듣다 가도 될 것 같다.




해가 뜨길 기다렸다 냉큼 나섰다. 전철역으로 향하는 길에 껄렁이들이 말을 걸어와 좀 무섭긴 했지만, 못 들은 척 쌩 지나쳤다. 그러고 보니 어제 잘못된 정보가 있었다. 전철역서 티켓을 사도 4.3헤알이었다. 맹점은 없었던 것으로..



(어제 먹지 못해) 아침으로 먹으려고 콕 찍어뒀던 샌드위치를 먹으러 부리나케 시장으로 향했다. 역에서 시장으로 걸어가는 길은 어제보다 좀 더 무서웠다. 어제 빈민가보다 나은 주택이라 생각했던 건물도 무척 빈민촌이었다. 거리에선 경찰차가 줄지어 범죄 현장을 제압 중이었다.



어쨌거나 요리조리 피해 시장에 도착했다. 문 연 곳이 많지 않았다.



드디어 시켰다~! 치즈는 꾸덕해 넘쳐흐르고 햄도 고소하니 괜찮지만, 너무 짜다. 카라멜라이즈된 양파가 없었으면 그나마 먹지도 못했을 맛. 게다가 커피는 또 너무 쓰다. 총체적 난국에 거의 남기고 나왔다.



시장에서 나와 성당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규칙 없이 곳곳에서 잠들어있는 홈리스와, 전날 밤 어떤 광란이 있었던 건지 쓰레기장이 된 곳곳을 치우는 미화원들로 한바탕 시끄러웠다.



게다가 오늘은 도심 마라톤도 있나 보다. 덕분에 이른 아침인데도 사람들이 좀 있었고, 덜 쫄아 다닐 수 있었다.



마지막 500m 알림판. 트랙을 통제하지 않아서 나도 보호받을 겸(?)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안쪽으로 걸어 다녔다.



Monument to Zumbi. 흑인의 어떤 뭔가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는데, 도통 모르겠네.



시청 바로 뒤 은행가에 무척 많은 노숙자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서둘러 걸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왔다. 성당 앞 광장에 모인 너무 많은 홈리스들이 무서워 카메라를 꺼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들어왔다. 미사가 곧 시작되려나 보다. 성가대 연습이 한창이었다.



내부는 크고 웅장했다. 미사 중간까지 듣다 나왔는데, 포르투기로 진행되는 미사의 느낌이 묘했다.



성당 내부에 보안 요원 여럿이 돌아다녔다. 홈리스가 앉아있으니 외부로 쫓아냈는데 기분이 좀 묘했다.



저렇게 많 사람들이 모두 홈리스라니!!! 믿을 수가 없다. 물론 해코지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대마를 피고 있거나 아침부터 술병을 들고 다니는데 조바심이 아니 날 수 없었다. 많은 여행지를 다녀봤지만, 작은 모닥불을 피워 바베큐를 구워먹는 홈리스는 처음봤다.



서둘러 Estação Anhangabaú 역 반대쪽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상파울루 시청.



시립 극장.



무척 상파울루의 올드타운을 잘 나타내는 구도. 현대적인 건물과, 고전적인 건물, 그리고 노숙자가 공존하는 도시.



공립 도서관.



이탈리아 빌딩. 밤에 봐도 멋지다던데, 사진으로 만족해야겠다.



아침 10시에 벌써 만보를 찍어버렸다.



버스를 타고 파울리스타 거리로 향했다. 처음 타는 상파울루의 버스. 버스 중간에 차장 아저씨가 앉아 계셔 버스 요금을 계산하면 된다. 버스 요금도 문제없이 잘 거슬러 주신다. 가격은 지하철과 동일한 4.3헤알. 그리고 좌측 우측 모두 문이 있는 신기한 형태의 버스다. 우측통행이지만, 길에따라 가끔 왼편에 정차하는 경우가 있다.



파울리스타 거리에 도착. 오늘은 차 없는 날인지, 버스도 노선을 바꾸어 달렸다.



듣던 대로 세련되었다. 홈리스나 치안 걱정 없이 맘껏 걸어 다닐 수 있어 좋았다.



생맥 트럭. 아직 오픈 전이라 마시진 못했지만.



약 2.6km 정도 통제된 거리. 넓은 도로 가운데 자전거 도로가 있고, 양 변으론 보행자도로가 있는데, 보행자도로에선 수공예품들을 팔고 있었다.



무척 가보고 싶던 서점 Livraria Cultura 에도 들어왔다. 듣던 대로 멋진 서점이다ㅎㅎ 수수께기 변주곡 페이퍼백이 있음 사고 싶었는데, 재고가 없다한다. 게다가 페이퍼백인데 3만원이나 한다길래 포기.



파울리스타거리 중간쯤 놓인 미술관, MASP 에 갔다. 오늘의 주요 목적지 중 하나.



상파울루 미술관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이미지가 있다. 작품들이 이렇게 공중에 떠 있는 형태로, 당연히 합성이라 생각했는데 진짜였다!



컨템포러리부터 1200년대 고전까지 아우르고 있고, 작가의 종류도 다양하다. 게다가 하나하나 맘에 들지 아니하는 작품이 없는, 정말 알찬 컬렉션이었다. 좋았던 작품들.



반 고흐의 황혼의 산책. 큰 프린팅이 있다면 사오고싶을 정도로, 멍하니 오래 보게되던 멋진 작품.



세잔의 작품도 좋았다. 엑상프로방스서 세잔의 아틀리에에 방문했던 기억도 새삼 떠오르고.



브라질 어느 화가의 그림도 좋았다. 수줍음이 내게까지 고스란히 전달되오는 느낌.



그리고 대망의 렘브란트_자화상++;
지금까지 본 렘브란트 자화상 중 가장 잘생긴 렘브란트가 앉아있는 자화상이었다. 오랜동안 꼼꼼히 확인했다.



2층의 상설전을 다 보고 1층의 특별전으로 내려왔다. 여성 화가들의 전시회라 한다. 좋았던 작품들.



거실에 TV 자리에, 아님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만나는 복도에 두기 안성맞춤이겠단 생각.



지하로 내려가는 중 만난 상파울루 시내 건물 외벽의 그림들. 또 하나의 현대 작품 같다는 생각을 하며.



처음으로 작품을 설치하는 작가들을 구경했다. 항상 궁금했었는데.



미술관 구경을 마치고 다시 거리로 나왔다. 사람이 더 많아졌다.



마그넷도 샀다.



옷을 두껍게 입고 나가 자켓은 벗어 가방에 넣었다.



곳곳에 먹거리 트럭도 많은데, 대표적인 건 이 옥수수. 근처만 지나가면 고소한 향이 으..



정말 삼바의 나라구나. 거리 곳곳에 공연이 많았는데, 넘치는 흥에 나도 덩달아 좀 기분이 업되었다.



길거리에서 맥주를 한 병 사 마시며 구경했다.



아직도 아침의 짠맛이 가시지 않아 점심을 스킾하려 했는데, 파울리스타 끝쪽에서 만난 푸드트럭에 점심을 해결하기로. 일본 문화원 앞이었는데, 오늘 무슨 행사를 하시는지 그 기념으로 트럭이 온 듯했다.



드디어 야끼소바를 먹어보는구나. 상파울루엔 무척 많은 일식집과 중식집이 있는데 대부분 모두 야끼소바를 판다. 학교서도 팔고 있어, 월요일 점심으로 먹어보려 했는데 더 일찍 먹게 되었다. 물론 예상대로 배를 채우기 위함이지 맛은…



다시 버스를 타고 vila madalena 지역으로 넘어왔다. 힙스터들의 구역이란 게 곳곳에서 느껴진다.



Beco do Batman 이라 불리는 배트맨 거리에 마켓이 들어섰다. 사람과, 음악과, 술과, 연기.



벽화를 구경하며 따라 걸었다.



Escadaria Do Patapio 라는 벽화 계단까지 들린 후 주요 목적지인 coffee lab 으로 향했다.



커피콩을 사 가려는데, 어떤 맛이 좋을지 몰라 두 잔을 시켰다. 서버가 와서 직접 내려주고 가시는데, 뭘 여러 개 물어보시길래 되도 않는 포르투기로 대답하니 건너편에 앉은 언니가 배꼽이 빠져라 웃었다. 비웃은 걸까..



주문판. 위쪽엔 주문 내역이, 아래쪽엔 앉은 테이블이 적혀있다. 재밌는 시스템이네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맹점이. 지우개로 지워서 캐셔에 가져가면 어찌하려고.



4시쯤 2만3천보.



사람이 무척 많아 대기 줄도 길었다. 혼자 온 덕분에 합석해 일찍 앉을 수 있었지만. 여기 있는 내내 브라질 사람들은 여가 시간이 생기면 85% 정도는 맥주를 마시고, 15% 정도만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금욕의 나라 인도네시아에 있다가 브라질로 넘어오니 좀 적응 안 되긴 하지만ㅎㅎ



휴대폰으로 다음 일정들을 생각하다 서둘러 나왔다. 브라질에서 사가면 좋은 기념품 리스트를 보다, 들려야 할 곳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역으로 걸어가는 길. 궁금하던 Instituto Tomie Ohtake 빌딩을 만났다. 물결처럼 되어있는 공간이 실제 건물의 골격이라 상상했는데, 평면에 철판을 덧붙인 형태였다.



서둘러 걸어 마감 30분을 앞두고 havaianas 에 도착했다.



쇼핑을 마치고, 마트서 물 한병과 과자 하나를 사고 (아령모양으로 생긴 무척 궁금했던 과자였는데 드디어 먹어봤다.) 지하철을 타 호텔로 돌아왔다.



600보 모자라지만, 알차게 걷고 신나게 구경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