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둥 #11

처음으로 갖는 Free day. 다만 무슬림의 휴일과 겹쳐 영업하지 않는 곳이 많았다. 아침 일찍 카페에 가 일을 좀 했고, 점심은 aotule 친구들과 함께하고, 아울렛에 가 쇼핑을 하다가, Astri 를 만나고, 다시 카페에 가 남은 일을 한 하루였다. 반둥을 너무 많이 좋아해져 버리게 된 하루.




무슬림은 대부분 가족과 보낼거라 거리가 한산할거라 하더니만, 정말이었다. 텅빈 거리를 홀로 산책하는 기분.



목적지인 스타벅스까지 걸어가는 여정이었는데 무척 힘들었다. 거리는 700m 남짓인데, 으… 무슬림의 풍습에 따라 길거리에서 소의 목을 칼로 베어 죽이고 있었다. 아이들은 신나서 자전거를 타고 그 주위를 맴돌았고, 아직 덜 죽은 소는 엉덩이를 들썩였다. 피로 물든 거리를 가로질러야 했다. 가장 힘들었던건, 죽어가는 소를 바라보는 그 앞에 매여있는 두 마리의 소… 풍습이라니 이해하지만 그래도 좀 견디기 힘든 아침이었다.



스타벅스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더 쾌적한 공간에 놀랐다. 종교적인 휴일의 아침이라 사람도 거의 없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대니쉬롤 세트를 시켰다. 인도네시아에 넘어온 뒤로 가장 빠른 인터넷을 경험했다.



어라! 반둥 텀블러가 있다. 그럼 반둥 머그도 있는걸까?



너무 집중이 잘 되어, 계속 머물까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금방 배가 고파올 것 같아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오늘은 non-무슬림 친구들의 p-day 라 한다. Pork-day!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돼지고기로 해결한다 했다. 나는 점심만 참여하기로. 고젝을 불러 따로 이동했다.



약속시간에 맞춰 도착했지만, 트래픽때문이었는지 레스토랑 앞에서 다른 애들을 좀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왔냐 물어봤다. 그렇다 답하니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라며 함께 사진을 찍자 했다. 셀럽의 느낌이 이런걸까. 어딜가든 한국을 좋아해준다. 정말 감사한 일.



레스토랑 안은 고기 냄새로 가득했고, 무척이나 붐볐다.



인도네시아에서의 첫 돼지고기. 삼겹살과 다른 부위가 섞여있었는데, 아무 소스도 바르지 않은 딱 바베큐 그대로의 맛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함께.



다른 친구들은 다시 호텔로 돌아갔고, 나는 다시 고젝을 불러 Rumah Mode 팩토리 아울렛으로 이동했다. 아스트리를 만나기까지 2시간 반정도의 시간이 있었는데, 카페에서 만나기로 한터라 짬을 내어 쇼핑을 하기로 했다.



후기가 너무 좋지 않아 그냥 건물 하나가 덩그러니 놓인 아울렛일거라 생각했는데, 생각과는 다른 빌리지 형태의 아울렛이었다.



내부는 사진 촬영이 불가했다. 7벌정도 샀는데 모두 함쳐 105달러 정도. 대부분 브랜드 의류나 명품 의류였는데, 가격이 무척 저렴했다. 두 가지중 하나일거라 추측. 이 곳에 공장이 있어 빼돌렸거나 아님 짝퉁. 둘 모두 섞였을 거라 추측했다. 그래도 저렴한 가격인데 어때~ 생각으로 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티셔츠를 몇 개 샀다.



쇼핑을 마치고 아슬아슬하게 딱 맞춰 출발했다. 가는길에 만난 구형 벤츠 300E. 한번도 올드카에 대한 관심이 없었는데, 묘하게 왜 끌렸지. 왜일까.



Astri와 만나기로 한 카페에 도착했다. Braga 스트리트에 있는 Kopi Toko Djawa 란 카페였다. 지난번 반두로스를 타고 지나갈 때 인도네시아 친구들 모두 여기가 이 거리에서 제일 좋은 카페라 했던게 생각났다. 우.. 근데 정말 좋은 카페였다. 다시 방문해 티셔츠나 커피콩을 사야겠다 생각했다.



아메리카노 대신 아스트리의 추천 커피를 마셨다. 약간의 스위트닝이 추가된 아이스 라떼인데 으.. 당이 떨어져가는 시간에 딱 맞는 선택이었다.



Astri와 나. 처음 Astri 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 때 우리가 너무 어렸던걸까? 키도 큰 것 같고 얼굴도 바뀐 것 같은데 Astri가 자기는 하나도 변한게 없다고 했다.



커피샵에 앉아 수다를 떨다 좀 걷기로 했다. Asia-Africa 거리를 걸었고,



모스크의 트윈타워를 지났다. 꿈같은 시간이었다. 휴일을 맞아 좀 붐볐지만, 환상적인 석양때문인지 기분이 좀 몽글몽글해졌다.



저녁으로 뭘먹을까 고민하다 간 Bakso 레스토랑은 오늘 휴일이었다. 길 한복판에 서서 뭘 먹을까 어딜갈까 고민하며 수다를 떠는 순간은 반둥으로 넘어와서 가장 낮은 엔트로피를 갖는 기분이 드는 순간이었다. 더이상 안정적일 수는 없겠다 싶을만큼, 옵티멈이 아닌 미니멈의 순간.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은 고작 3개월뿐이었는데, 이런 기분을 가질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인연이란 뭘까.



결국 저녁을 먹으러 호텔 근처의 음식점으로 왔다. 이런 곳이 있었다니!! 왜 여태까지 몰랐지. (비교적) 무척 깔끔한 집이었다. Geprek 은 뭉갠것 을 뜻한다 했다.



Astri 는 2단계 삼발, 나는 3단계 삼발 아얌 고프렉을 시켰다. Tempeh 라는 콩튀김도 추가했다. 무척 맛있게 먹었다. 가격도 무척 저렴… 왠지 혼자 한 번 더 와서 먹을 듯. 이런 저런 얘기를 마저했다.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언제 다시 만나게 될까, 만나게 될 곳은 어디일까 그런 것들. Astri 가 95년생이란 것도 알게되었고, 일본에서의 시간들도 다시 공유하며 같은 상황에 대해 똑같이 느꼈던 감정들 혹은 미묘히 다르게 느꼈던 것들을 얘기했다. 그 시절이 너무 그립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고, 지금을 열심히 살아갈 수 밖에 없단 얘기를 했다. Astri의 집은 반둥이지만 한 시간 반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해, 일찍 보내야했다. 내일 출근도 해야할텐데 괜시리 미안해졌다.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는게 느껴져 좀 착잡한 심정이 들기도 했다.



생각치도 못했던 Astri 의 선물. 라면이나 비스킷, 소스 같은 것이 들어있었는데 그 세심함에 고마웠다. 나도 뭔가 주고싶어 고민하다 고추장(!)을 가져갔는데 아뿔싸… 할랄이 아닌 소고기 고추장이라 줄 수 없었다. 미안해 Astri…



오늘 쇼핑한 것들. 내일 새로 산 셔츠 입어야지~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내일은 단체복을 입어야하는 날ㅠㅠ



그대로 방에서 쉴까, 맥주나 한 잔 마시러 갈까 고민하다 노트북을 챙겨 24시간 upnormal 커피로 왔다. 굉장히 붐벼 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자리를 잡고 일을 시작. 이 곳에 도착한 첫 날이 생각난다.



좀 출출해져 미고랭도 주문했다. 삼발로 시켰더니 위가 얼얼한 느낌. 더 늦게까지 하고싶었는데 호텔에서 친구들이 아직 안자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해 미안한 마음에, 일을 다 끝내지 못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휴일이라 다들 씻는 시간이 달랐던지 아직 뜨거운 물이 나오고 있었다. 오랜동안 샤워를 하고, 몰래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지난번 여행에서 남은) 맥주를 한 캔 마시고 잠들었다. 기차시간에 쫓기는 악몽이었지만, 덕분에 늦잠을 자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