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늦잠을 자려 했지만, 어제 컴퓨터를 하다 정신없이 잠든 바람에 허겁지겁 일찍 일어나버렸다. 요즘 꿨던 악몽을 스키밍해 집약한 것 같은 꿈을 꿨는데, 평소같았으면 일어나서 헥헥거리며 멍했겠지만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샤워를 했다. 어제 호텔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샤워를 한 탓에 찬물로 씻어야했기에 뜨거운 물로 다시 샤워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뜨거운 물을 맞으며 이런 저런 생각의 정리를 했다.

1박 2일로 Citeluh 를 다녀오기 전까진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거지, 난 누구지 같은 생각을 했다. 너무 느린 인터넷, 자유시간의 부재, 의식주의 어려움. 여기서 보낸 2주동안 여러가지로 불편한 것이 많아 얼른 한국으로 돌아가고싶단 생각뿐이었다. Citeluh 에선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생각치 않으며 나 스스로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시간들이 많았다. 바닷가에서, 폭포수 앞에서, 오두막 테라스 어디서든 멍하니 앉아 남십자성을 볼 시간도 있었고, 왕복 14시간의 버스에선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짤막하게나마 엿보는 시간도 있었다. 그냥 세상에서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배제해버린 시간이 필요했었던걸까, 그런 생각이 잠시 들기도.

너무 다른 문화에 아직도 좀 힘들지만 (아마도 1년을 살아도 여전히 힘들 것 같지만) 이곳에서 보낸 19일이 인생에서는 꽤나 큰 의미를 가질 것 같단 예감이 든다. 채식이 하고싶어졌고, 아침 일찍 일어나 30분이라도 짤막하게 커피타임을 가지며 노트북을 하거나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졌다. 기회가 다가왔을 때 좀 아프게 되더라도 절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 바쁘게 굴러가는 세계에서 분위기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챙기는 여유 같은 것들.

호텔 근처 스타벅스에 왔다. 고젝으로 시켜만 먹어봤지, 직접 와 본 것은 처음인데 진작 자주 올걸. 이제 이 곳에서의 시간도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다. 다음에 또 방문의 기회가 생긴다면, 그 땐 모든 마음의 짐을 한국에 놓은 채 오고싶다. 더 깊고 풍부한 이 곳에서의 삶이 좀 궁금해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