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

피곤하다. 무슨 용기로 그러겠다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밤새 뚝딱거려서 정보과학회에 한 편을 냈다. 이건 정말 순전히 이 번 겨울 방학때 평창은 한 번 가보겠다는 의욕에서 비롯된 것. 근데 너무 엉망으로 써서 떨어져도 할 말이 없다.

서울에서 영상 복원 기술에 대한 강연을 듣고왔다. 생각보다 테크니컬한 사례 소개가 아니여서 놀랐다. 그리고 역시나 초반에 좀 졸았다. 중후반엔 정신을 차렸는데, 아이러니하게도 90년대, 2000년대 영화들을 복원하고 있단 얘기에서부터 왜 내가 그 시절 한국 영화들을 좋아했는지 실마리가 좀 풀렸다. 모두 grain 이 문제였다.

올라가는 기차부터 기분이 좋았다. 수색에 도착해 영상자료원까지 걸어가 세미나 전까지 전시회를 관람한 것도 좋았다. 세미나가 끝나고선 서울의 러시아워를 직격으로 경험하고선 수민이를 만나 막차를 탈때까지 수다를 떨었다. 처음 cg쪽을 하고싶다 생각했을 때 함께있던 친구라 더 감회가 새로웠다. 비록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어쨌거나 추억을 공유한다는 데서 오는 친밀감이 좋았다. 물론 추억이 없어도 느껴졌을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친밀감도 좋았다. 술을 몇 잔 걸친데다 정신이 없어서 말이 주저리주저리 많지만.. 어쨌거나 즐거운 남미여행되길~!

대전으로 내려오는 버스에서 잠시 기절을 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니 터미널이었다. 택시를 탈까 하다가, 그냥 걸었다. 요즘은 조금의 걸음으로 얼른 열을 끌어올려 으스스하게 느껴지는 추위를 이겨내는 데 조금 맛들려버렸다. 오늘 하루종일은 힘이 나는 노동요를 들었는데, 걸어오는 길엔 지연 언니가 추천해줬던 Queen 의 my melancholy blues를 들었다. 여러가지 단상이 스쳤는데 좀 더 들어보고선 나중에 music 섹션에 적어야지.

아직도 수요일밖에 지나지 않았다니. 일주일이 너무 길다.

사실은 상암 dmc 에서 고속터미널로 이동하려 버스를 기다리며 엄청 혼돈에 휩싸여버렸다. 나 그대로 영화 쪽 연구해도 괜찮을까? 오늘 서울에 올라가기 전까진 엄청 자신감이 폭발하고 있었는데, 한풀 꺾여버렸다. 어딜 파고들어야 기가막히게 원래 내 자리였던냥 자연스럽게 정착할 수 있을까.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다. 일단은 너무 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