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플레밍

오래전 예매한 르네플레밍 내한 공연을 보러 서울에 다녀왔다. 비 소식에 낮엔 박물관에 짱박혀있다 저녁에 공연을 보러 갈 생각이었는데 비가 안왔다. 하하. 덕분에 좀 돌아다니다, 결국 박물관 구경을 하고 공연을 보러갔다.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술마신 것처럼 정신이 알딸딸한 기분좋은 하루였다.



버스를 타고 출발. 살구를 떼놓고 갈 생각을 하니 맴이 아팠지만..ㅠㅠ


회현 지하상가 리빙사에 갔다. 맘에드는 LP 는 비쌌고, 싼 LP 중엔 찾는 것이 없었다.


길버트 오 설리반 LP 하나를 사서 지하상가를 빠져나왔다.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점심엔 꼭 베트남 반미 샌드위치를 먹고 싶었다. 남산터널을 지나 레호이에 갔는데, 아뿔싸 휴무일. 날이 더워 앞에 나와계신 할머님들이 ‘아이구 어뜩하나 여기 오늘 안혀. 담에와. 내일 와.’ 하셨는데 차마 안 그러겠다고는 못하겠어, 알겠다 하고 발길을 돌렸다.


해방촌에 하나쯤 더 있지 않을까 싶어 검색검색하니 딱맞춰 육교 건너 베트남 음식점이 하나 더 있었다. 육교를 건너 ㄱㄱ


반미 바게트는 내 예상대로 내가 딱 좋아하는 식감의 빵이었다. 집에와서 만들어먹어볼까 생각에 레시피도 찾아봤다. 고수를 따로 달라해서 조금씩 같이 먹었는데 흠 역시 안되겠어.ㅠㅠ


바이닐 플라스틱부터 갈까, 박물관부터 갈까 하다 박물관부터 갔다. 마을버스를 타고 해방촌을 넘어 후암동을 지나 숙대입구로 갔다. 후암동을 지날땐 비밀의 숲이 생각나 피식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온 기억은 없다. (전쟁기념은 그렇게 많이 갔으면서..) 월요일 오후라 사람도 거의 없어, 천천히 구경할 수 있어 좋았다. 기억에 남는 몇 컷들을 남긴다. 가령, 산수화에 쓰였던 안료의 원재료라든가,


이하응의 초상화.


그리고 초상화의 제작 과정. 이건 정말 궁금했던 것이었는데, 드디어 의문이 풀렸다.


비단 뒤에 채색을 해서 그렇게 은은한 색이 나는거였다. 1도 상상 못했음!


책에서 제목만 많이봤던 법화경도 실제로 보게되고,


고성의 옥천사에서 가져왔다는 괘불은 그 크기가 어마무시했다.


자연이 그려져있는 자개장에는 사실 별 관심이 없는데, 조선 후기에 주로 만들어졌다는 기하학적인 무늬들의 자개장은 꽤나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듬잇돌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뭐랄까.. 모니터를 올려 놓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관람 순서를 어떻게 가져갈까 고민하다, 제일 좋아하는 회화부터 보려 2층, 그리고 3층, 그 다음 1층으로 이동했다.


도자기 중에 아름다움이 으뜸이라 생각하는 조선 백자.


저런 술병은 어떻게 설거지를 했을까? 그냥 물로 휙휙?


반가사유상은 룸에 별도로 되어있어, 오롯이 구경할 수 있게 해놓았다.


석탑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은 처음이다.


돌 속에 여자가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냐는, 영화 까미유 끌로델이 생각나게 하는 조각 이었다.


일본의 산수화. 어느 섬이라는데, 그 형태가 기괴해 사진을 찍었다.


조선통신사가 이동한 경로를 담은 그림과 글. 카나가와를 지날때이다.


신라를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생각을 남긴 신라는 부럽다.


1층에서 가장 보고싶던 조선, 대한제국 섹션.


ㅋㅋㅋ그래서 내가…??


임상옥의 가포집은 어디에 있는걸까? 궁금하게 만들었던 문서.


척화비와 실제 운현궁에 있었던 포.


기념품으로 예쁜 조선 백자만 사고싶었는데, 조선 백자 한 피스만 파는건 없다고. ㅠㅠ 어쩔 수 없이 두 피스짜리를 사왔다.


뭐랄까, 다른 나라의 국립박물관에 다녀온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개별 물품의 디테일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을 가르쳐주고 싶다는 느낌이 강했다. 뭐 나쁘진 않았다. 시간이 애매했다. 바이닐 플라스틱에 들렀다 가면 좀 늦을 것 같았지만 무작정 가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바이닐 플라스틱에 도착할 때 쯤 검색해보고 알았다. 오늘이 휴무일이란것을.. 타고 있는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양재까지 갔다.


드디어 도착한 예술의 전당.


사람이 무척 많았다. 특히나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이 많아보였다.


사인회라니! 그런데 왠지 사인을 받고 가면 대전에 못 내려갈 것 같았다.


오늘 공연은 전석 매진이란다.


공연이 끝난 뒤 한 컷! 공연은 무척 좋았다. 아무래도 르네플레밍은 기교가 많거나 빠른 템포의 곡보다는, 호흡이 느린 잔잔한 음악에 더 맞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중간중간에 마이크를 들고 여러 이야기도 들려줬는데, 따뜻한 미국 아줌마의 포스가 흘렀다. 앵콜은 총 3곡을 불렀는데, 그 중 단연 좋았던 것은 Rusalka 의 Song to the moon! 살아 생전 육성으로 직접 들을 수 있다니!


사인회장에 줄을 섰지만 (나름 앞쪽이었는데) 정말로 한 시간을 넘길 것 같아 그냥 나왔다. 좋은 곡을 직접 들어 벅찬 감동이 CD 장에 갇혀버릴 싸인 CD보다 더한 가치라는 생각에 아쉽거나 아깝지 않았다. 내려오는 길엔 폭우로 버스가 전복되는 줄 알았지만 잘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