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26

어제 밤에도 늦게 잤지만, 오늘 일정을 미리 픽스해둔 덕에 아침에 일어나 허둥지둥 대지 않고 시작할 수 있었다.

오늘의 목표는 덴엔초후, 고토쿠지, 산겐자야 관광하기였다. 물론 지유가오카에 내려 다 걸어서 다녀보기였는데 나름 성공이다. 시간이 되면 시부야 디스크 유니온도 가려 했는데 거긴 못갔다.

일정이 타이트하게 착착 다 잡혀있었는데 중간에 주성치를 만나는 바람에 다 꼬여버렸다. 이것저것 생각하고 싶은게 많았는데 하루종일 아 그때 왜 말 못걸고 피해버렸을까 후회로 가득찼다.

지금와서는 별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누굴 만나는 것도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다 그저 그런 흔들리고 흔들리고 돌아가는 진짜 아무 것도 아닌 허망한 일인 것 같고.

암튼 결론은, 열심히 뭐든 뭐든 해내서 더 나은 좋은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유명할 필요는 없는데, 좋은 향기가 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야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 하루였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좋은 향기가 나는 이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리워한 날이기도 했다.



한낮의 지유가오카. 날씨도 맑고 하늘도 좋고. 썬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긴 했지만 구워져가는 느낌이었다.


지유가오카를 벗어나 덴엔초후로 걷기 시작했다. 관광객 지옥을 벗어나면서부터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가는 길에 햇볕이 쨍해 힘들긴 했지만 기찻길을 걷는건 언제나 즐겁다.


지하철로 한 정거장이니까, 그냥 걷기로 했는데 걷길 잘한 것 같다. 기분이 마냥 좋았다.


드디어 덴엔초후 역에 도착! 우리나라로 치면, 아침드라마에 아주머니들이 ‘성북동입니다’, ‘평창동입니다’ 하는 식으로 ‘덴엔초후입니다’ 하는 동네란다. 마을 초입부터 유럽 놀러 온 줄 알았다.


그리고 정말 부촌이었다. 엄청난 대 저택들이 많았으며, 정말이지 나만 관광하고 있었다.


덴엔초후 역이라 쓰여있지만 사실상 시그니쳐 건물일뿐 역은 뒤쪽 옆에 따로 있다. 왠지 100년 뒤에 에도건축공원에 가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덴엔초후 구경을 마치고 지유가오카로 넘어가는 도중 그와 그의 여자친구를 봤다ㅠㅠ 정말 말도 안되게 나는 내 길을 가고 있었고 그들은 식사를 마치고 갓 식당에서 나와 앞으로 걸어갔다. 1m도 안되는 거리를 두고가다보니 넘나 불편하고 두근거렸다. 주성치가 그녀의 엉덩이도 주무르고 아주 가관이었기에 조금 보폭을 늦췄는데 그들이 아마 나를 눈치챘는지 말을 주고받더니 주성치가 앞으로 달려나가다 뒤를 훅 돌아보며 점핑을 휙휙 하고 나를 바라본 뒤 옆에 편의점으로 아주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100m 쯤 함께 걸은 뒤였다. 나는 뭐랄까.. 스토커가 된 느낌이라 그냥 내 갈길을 걸었는데 괜히 궁금하고 궁금해 50m 쯤 더가서 멈춰서 뒤쪽을 몰래 관찰했다. 천천히 내 쪽으로 걸어오는 그들을 봤는데 나를 본건지 갑자기 또 방향을 오른쪽으로 휙 틀었다ㅠㅠ 그냥 에이 하고 내 갈길 가려다가 또 미련이 남았는지 지유가오카 역으로 나도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엄청나게 빠른 걸음으로 지유가오카 동편으로 넘어갔고 나는 그냥 그들을 멀리서 바라봤다. 뭐랄까 오늘 하루 종일 이 사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는데 정리가 잘 안된다. 여튼 좋은 방향으로 결론이 난 건 확실하다.


휴 여튼 엄청 걸었다. 몇 km를 걸은거지? 지유가오카를 빙빙 돌다가 산겐자야로 넘어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원래 더 일찍이었어야 했는데 본의 아니게. voi voi는 4시가 넘은 시간에도 웨이팅이 있더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젠 갑자기 팬케익이 먹고싶었다. 드디어 오늘 소원을 이뤘다. 팬케익과 아이스커피로 첫 끼니를.


그리고 산겐자야의 ZARD 성지를 다녀왔다. きっと忘れない 커버 촬영지라는 THE GLOBE. 가격이 비싸지 않아서 언제 한 번 와서 런치세트 먹어야지 생각.


그리고 오늘의 주요 일정 중 하나인 캐롯타워로 향했다. 여기서 보는 도쿄 뷰가 예술이라길래.


정말 예술 맞더라. 무료로 볼 수 있는 26층 전망대에선 뒤 쪽 후지산이 보인다. 레스토랑이 차지하고 있는 앞쪽에선 도쿄 뷰가 완전 끝장이던데


후타코 타마가와도 보이고, 후지산도 보인다! 만년설은 없더라.


그리고 엘레베이터 옆으론 신주쿠도 보인다. 도쿄도청과 NTT 도코모 빌딩도 보이고.


그리고 산겐자야를 빠져나와 고토쿠지로 걷기 시작했다. 이거도 정말 넘나 멀었는데 어쨌든간 걸었다. 걷는 길은 너무 아름다워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별 생각 없이, 아 아름답다 생각으로 사십분을 걸은 것 같다. 석양에 빛나는 창문, 나무, 길, 모두 거짓말처럼 아름다웠다.


걷는 길에 정말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그 중 하나.


세타가야구 선거 포스터 판인데 볼 때 마다 웃었다. 이분들 뭐얔ㅋㅋㅋㅋㅋㅋ


고토쿠지로 걷는 길은 정말이지 넘나 좋았다.


석양이 너무 아름다워서 연신 ‘어머어머’ 하며 다녔다.


누군가 말하길 도쿄에 이름난 곳들보다 이렇게 새로운 곳들을 개척해나가는 맛으로 여행한다던데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누구에게도 알려주고싶지 않은 정말 그 어느 곳보다도 아름다운 그런 길이었다.


드디어 고토쿠지에 도착! 듣던대로 고양이 마을이더라 온 마을 곳곳에 고양이 캐릭터들이.


책이 추천한대로 미야노사카로 걸어 내려가기 시작. 예쁜 꽃집 발견.


고양이 2.


고양이 3.


해가 져 갈수록 넘나 아쉬웠다. 석양을 붙잡고싶은 마음.


창문 하나로 일본 스타일 집이 유럽으로 변한 순간. 그럼 안되는데, What makes paris look like paris 논문이 생각나버렸다…


고토쿠지 절 근처 예쁜 타일의 집 발견.


드디어 미야노사카에 도착. 여기에 에노덴이 있다는 소리에.


진짜 옛 에노덴이 있었다. 안에도 들어가고 싶었는데 잠겨 있었다.


원래 걸어서 산겐자야나 시부야로 돌아가려 했는데 넘나 힘들어서 세타가야선을 타기로 했다.


세타가야선 넘나 이쁜 것. 좌석도 넘나 편한데 지나가는 철로 옆 풍경도 예쁘다. 승객을 배려한 좌석 손잡이도 넘나 귀여운 것.


내가 걸어온 길을 다시 전철을 타고 가는 느낌이 묘했다.


그리고 미련이 나와 다시 캐럿빌딩에 올랐다ㅋㅋㅋ 해질 무렵의 도쿄와 요코하마.


산겐자야를 배회했다.


스즈란도오리도 구경했다. 그리고 시부야로 가려던 발걸음을 멈춰 다시 캐롯타워에 갔다ㅋㅋㅋ 아놬ㅋㅋㅋㅋ


해가 져서 야경을 보러 다시 올랐다. 도쿄타워나 도쿄도청에선 보지 못하던 새로운 느낌의 도쿄였다. 정말이지 레스토랑에서는 도쿄타워가 바로 보이던데


돌아다니다 넘나 궁금해 찾아봤는데 끈적끈적한 뭐랄까 뭐라 해야하지 여튼 ‘오크라’라는 이름이란다. 맨날 슈퍼에서 볼때마다 이게 뭘까 고추일까 뭘까 궁금해했는데 드디어 알았다. 레시피를 찾아봤는데 베이컨이랑 볶아 먹음 맛있대서 사와봤다.


베이컨이랑 볶아서 간장 찔끔 넣고 밥이랑 먹었는데 아놔 이거 진짜 꿀맛이다! 또 사올 것 같다ㅋㅋㅋ


오늘의 친구들. 저 산토리위스키 저가라인이라는 토리스를 맛만 보고 싶은데 맨날 큰거밖에 없어 고민하다가, 드디어 미니 토리스를 만났다. 그리고 토마토맛 아사히는 뭐랄까 토마토주스에 알콜찔끔 넣은 느낌.


그리고 산겐자야를 배회하다 사온 줄넘기와 와인마개. 드디어 와인을 한방에 안끝내도 된다!! 나의 로망은 술을 쟁여놓고 이것 저것 조금씩 맛보는건데 항상 사오면 그날 끝이라 ‘아 나는 안되는걸까 안 되는 애인가보다’ 생각했었다. 와인 마개도 사왔으니, 이젠 진짜… 진짜 한 잔만 마시고 제발 닫아놓자…